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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der Inequality and Patriarchal Order Reexamined, Cho Uhn



<조은 교수>


  이 논문은 현대 한국 사회의 불평등 문제에 대해 논하고 있다. 저자는 크게 가부장제가 gender inequality 미친 영향, 급격한 산업화, IMF 금융위기 한국의 특수한 역사 속에서 생겨난 Gender Inequality 대한 인식의 변화라는 가지 관점에서 불평등을 논하고 있다. 특히나 논문은 내부의 문제를 통해 한국의 gender inequality 분석해보고자 했다는 것에 의의를 있다.


 우선적으로 논문의 초반 부분에는, gender inequality 노동분야에서도 나타난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제시해주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아직까지도 25~29 구간을 제외한 여성의 육아와 가사 노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구간 전체에서 남성(74.2%) 비해 여성의 노동참여율(LFP) 낮은 수치(48.6%) 유지되고 있다. 심지어 고위직 여성 비율은 5%대밖에 되지 않는 더욱 심각한 편이고, 여성이 불안정적이며 일시적인 직종에 많이 종사하다 보니 임금 자체만으로도 남성과의 격차가 꽤나 벌어져 있다.


<출처 아시아 경제>

이후 저자는 가지의 역사적 사건과 가부장제를 곁들여 한국 사회에서의 gender inequality 설명하며, 가지 argument 제시했다. 첫번째 argument IMF 시기를 거치면서 강화된 가부장제적 질서가 불평등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1960~80년대 우리나라는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산업 선도 직종이 변화했다. 시기에 농촌 지역의 가부장적인 분위기와 값싼 노동력의 필요로 인하여 여성 노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기에는 여성 노동이 양적으로는 증가하였지만, 낮은 여성 임금 등에 대한 시위는 쉽사리 이루어지지 못하는 ,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낮은 처우의 노동이었다. 이런 상황이 IMF 시기를 거치면서 남성 노동이 가족임금이라는 가부장적인 인식 증가와 맞물리며, 임산부가 해고 1순위, 기혼 여성이 해고 2순위로 꼽히게 되는 여성근로자들의 권리는 바닥까지 떨어지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유동성 있는 세계 금융 자본이 가부장제와 협력하여 한국의 labor gender inequality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번째 argument 또한 위의 역사적 상황과 관련이 있다. 남성 생계 수단과 여성과 주부를 동일시 하는 경향성은 경제 위기에 의해 증대되고 합법화되었다. 산업화 시기에 만들어진 노동조합마저도 남성이 지배하는 구조이다 보니 여성 근로자들의 정리 해고에 일정 이상 동의를 하였고, 여성 근로자들의 권리를 신장을 외치는 목소리는 그렇게 크지 않아 정리 해고에 맞서기 힘들었다. 이로 인하여 여성들은 외부 노동보다는 가사 노동에 필요한 존재라는 가부장적인 인식이 심화되었고, 여성의 우선적 해고가 당연시 여겨지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gender inequality 영향을 끼쳤다고 평했다.

마지막 argument 경우 호주제와 관련된 것이다. Hojuje has also contributed to fortifying the maintenance of gender inequality. 호주제는 남녀가 법적으로 평등함에도 불구하고 남성이 여성보다 집안의 가장을 정할 우선순위가 된다는 부분에서 문제가 되어 2005 폐지된 법이다. 호주제는 남아선호사상과 함께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법적으로 지지한다는 측면에서 gender inequality 현상 유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저자는 이런 역사적 상황을 통해 굳어진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바꾸기 위해서는 호주제 폐지 등의 사회에 대한 정치적 개입이 필요함을 이야기했다. 2005 실제로 호주제가 폐지되었고, 어느정도 필자의 주장이 gender inequality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까지 성차별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만, 10~ 20대의 경우 40~ 50대처럼 가부장적이지는 않아 점차 gender inequality가 줄어들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SNS를 통해 여성혐오에 대한 열띤 논쟁을 펼치는 것을 보면서 아직까지 남성과 여성이 절대적으로 동등하지는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 토론에서 여성은 강남역 사건을 빗대어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적인 인식을 비판하기도 하고, 아직까지도 여전한 가부장적 제도에 의한 사회 여러 방면에서의 성차별(깨지지 않는 유리천장, 여성 국회의원 비율 17% )을 제시하며 남성을 비판했다. 이에 대해 남성은 여성 고용 할당제로 인한 역차별과 더불어 국방의 의무가 남성에게만 있다는 점, 남성을 범죄자로 취급해버리는 인식을 문제 삼는 것을 보았다.

더불어 -페미니스트(like 메갈리아, 워마드) 등장은 나에게 gender inequality 대한 남성과 여성의 관점 차이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불평등이 어떻게 야기되었고, 과거와 현재의 성불평등 현상의 형태가 어떻게 변화하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논문을 접하게 되었다. 논문이 2004년에 만들어진 것이라 현재의 gender inequality 현상을 설명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특히 노동 분야의 gender inequality 생성과정에 대해 생각할 있었다는 점이 소득이었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다양한 평등 정책과 교육이 시행되며, 점차 성차별에 대한 깨어있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아지고 있는 만큼, 나도 필자의 주장처럼 양성평등에 대한 정치 개입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지향하는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된 만큼, 나은 양성평등 정책이 나올 것이라는 바람을 갖고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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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과학 논쟁(강윤재) 서평&독후감





이 책을 읽던 중 "13 여성과 과학의 거리두기 : 누구의 책임인가?-과학과 젠더"를 읽고 저자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이슈화 된 페미니즘과도 관련되어 있는 이 목차의 내용에서 저자느 남성과 여성을 단지 이분화하여 여성 과학자들의 사회적 어려움을 호소한다. 물론 객관적 통계자료에 있어서 여성 과학자들의 참여 비율이 상당히 저조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어 여성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과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여성 과학자들의 연구 방법을 남성 과학자의 그것과는 다르게 접근하여 새로운 과학하기(science doing)으로 정의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의 이분화라고 밖에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시각에 입각하여 필자는 다음과 같은 독후감을 써보았다.

혹시 책을 읽지 않는 분들을 위하여 책의 내용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혹시나 독후감을 읽고 페미니즘이나 여성 과학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본 책 목차 13번을 꼭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린다.




과학적 객관성에서 여성 중심적 과학의 의미와 그 이해

    저자는 과학계에서 여성 과학자의 저조한 수적 비율과 영향력이 기존 과학의 남성 중심적 관념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며 ‘맥클린톡’과 ‘수정이론’의 사례를 들어 여성 중심적 과학을 통해 과학이 좀 더 객관성을 가지고 발전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나는 저자가 제시한 두 가지 예시를 보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과 ‘태양계에서의 명왕성 퇴출 사건’이 각각 떠올랐고 이 사례들을 통해 여성 중심적 과학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맥클린톡의 튀는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당시 과학자들의 반발을 샀다. 그 주요 원인은 연구 결과의 이론적 근거가 되는 두 과학자의 과학하기(science doing)가 기존 과학계의 상식과 완전히 다른 식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맥클린톡은 기존 생물학 연구와 달리 연구 대상과의 관계맺기와 교감을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코페르니쿠스는 천동설의 기본 모델인 복잡한 주전원에 의심을 품고 천문학 연구의 정석인 관측 과정 없이 행성의 운동을 단순한 원운동 모델로 그린 후 이를 이론적으로 증명해보며 지동설을 확립해나갔다. 나는 여기서 두 과학자가 당시 보편적이고 통념화된 과학하기와 차별되는 그것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기존 과학적 이론과 이질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에 주목하려 한다. 튀는 유전자와 지동설 모두 현재는 과학적으로 인정받는 사실이지만 당시 두 의견은 단지 당시 정설과 차이를 보이고 특히 연구 방법에 있어서 상당히 획기적이었기에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며 상당히 비과학적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만약 맥클린톡이 여성 과학자가 아니고 남성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그 연구 방법은 생물학계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거로 생각한다. 저자의 주장처럼 맥클린톡이 여성 과학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새로운 과학하기를 창안해내어 그것을 남성 과학자들이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처럼 남성 과학자가 기존의 연구 방법과 다른 과학하기로 연구를 진행하더라고 이것이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과학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즉 나는 여성 중심적 과학의 의미를 기존의 과학계가 인정하는 과학적 접근과 차이가 있는 과학하기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 중심적 과학이 오직 여성적 사고방식이라서 제대로 존중받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코페르니쿠스의 연구 방법처럼 그녀들의 과학하기가 기존 과학계의 상식과는 너무 차이가 나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점에서 활성화되지 못했다고 보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글에서 예시로 든 수정이론은 꾸준히 개정되는 과학이론의 특성에 입각할 필요가 있다. 본문을 읽고 수정이론의 변화가 여성 중심적 과학하기를 통해 객관성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지만 이보다는 ‘태양계의 명왕성 제외’처럼 여러 과학자가 고민함으로써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인 과학에 접근하는 한 과정이라고 봐야 한다. 수정이론의 변화를 남성 중심적 과학에 여성 중심적 과학이 유입되어 올바른 수정이론을 확립했다는 식으로 이분화하여 보기보다 정설로 여겨지던 이론에 이의를 제기하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는 여성 중심적 과학을 ‘여성’에 초점 맞추지 말고 여성 과학자가 만든 ‘새로운’ 방법의 과학하기라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성 구별 없이 특별한 의견과 방법을 제시하는 과학자를 허투루 넘기지 말고 일일이 그 타당성을 따져보며 존중하는 것이 과학의 객관성 확보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의 새로운 의견을 진심으로 존중하며 무한히 수정되는 과학의 본질을 이해할 때 인류의 과학은 확실한 객관성을 가지고 정답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by 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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