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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건 도서출판 북스토리의 영향이 컸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발매된 피너츠 만화도 좋긴 했지만, 피너츠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등장한 후 그려진 만화들을 모아서 발매했기 때문에 그 이외의 만화들은 해외판을 구해야만 볼 수 있었죠. 하지만 2015년부터 슐츠가 그린 1950년부터 2000년까지의 모든 만화들을 2년 씩 시간 순서대로 내놓은 <피너츠 완전판>이 발매가 되면서 <피너츠>의 역사와 등장인물의 변화, 그림체의 변화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피너츠 완전판> 1950~1960 세트. 2018년 1월 7일 현재 10권(1968~1970)까지 출간되었다.

<피너츠>의 주인공인 찰리 브라운은 지그재그 무늬가 있는 티셔츠를 입고 다닙니다. 앞머리에 있는 약간의 머리다발(?)을 제외하면 대머리이며, 다른 인물에 비해 머리모양이 둥글어 가끔씩 지구본 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셔미와 패티*보다 나이가 적고 작은 인물로 묘사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과 동년배가 됩니다(이러한 경향은 나중에 루시와 슈뢰더에서도 똑같이 나타납니다).


그는 여자애들에게 온갖 핍박을 당합니다. 처음에는 서로 괜찮게 지냈지만, 바이올렛과 루시가 등장하고, 루시가 찰리 브라운 상대로 체커에서 1000번 연속 승리를 거둔 때부터 세 명의 여자인물(패티, 바이올렛, 루시)에게 좋은 소리는 거의 듣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찰리 브라운은 그들에게 제대로 반박을 하지 못하는 내성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후에 찰리의 좋아하는 빨간머리 소녀에게도 제대로 고백을 하지 못합니다. 1편에서 봤듯이, 원작자 찰스 슐츠도 고등학생 때 문제아였으며 별 볼 일 없이 지냈듯, 찰리 브라운도 자신의 옛날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그는 어느 리틀 야구팀의 감독 겸 선수입니다. 하지만 이 팀은 리틀리그 가입을 거절당한 모든 멤버들로 이루어졌고, 실제로 연전연패를 거듭합니다. 또한 개 한 마리(스누피)도 라인업에 포함시킬 정도로 인기가 없습니다. 이 팀의 멤버들은 경기가 있기 전날마다 비가 와서 경기가 미뤄지기를 바라며, 운이 없어 경기가 시작할 때는 몇백점 대의 점수를 내주고 집니다. 그만큼 실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멤버(피너츠 등장인물)들은 질 때 마다 감독인 찰리 브라운 탓만 하고, 찰리 자신도 자신의 잘못과 함께 멤버들의 비난을 함께 짊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그의 인내심이 거의 탈 인간 급 수준인 듯합니다. 주위 사람들의 비난과 애완동물인 스누피가 찰리 브라운을 자신과 동급 혹은 그 아래로 생각한다는 걸 고려하면 말이죠.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마음대로 일이 진행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야구경기 중 중요한 득점 경기에서는 삼진을 먹고, 혼자서만 발렌타인 카드를 받지 못하며, 다른 아이들이 초콜릿을 받을 때 혼자만 돌을 받습니다. 아무리 최적의 조건에서 연을 날려도 도통 연이 뜨지 못하며, 계속 어딘가로 곤두박질치거나 항상 걸리던 나무에 걸려 연을 버립니다.(그 나무는 ‘kite-eating tree’라는 이름으로 가끔씩 만화에 등장합니다. 눈 오는 날 나무의 눈을 털면 찰리 브라운의 연 여러 개가 얽힌 채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그의 불운은, 위에서 설명한 그의 불운한 인간관계와 내성적인 성격을 더욱 부가시켜줍니다.

*셔미와 패티는 찰리 브라운과 함께 <피너츠> 첫 화에 등장한 인물입니다. 두 인물은 슐츠가 <피너츠>를 그리기 전 만화인 <릴 포크스>에 등장했었고, 셔미는 역사적인 <피너츠>의 첫 대사를 말하는 영광도 얻었죠. 하지만 슐츠는 두 캐릭터의 개성이 부족하다고 여겼는지, 60년대 후반 셔미의 역할은 프랭클린(<피너츠>에 등장하는 흑인 남자아이)에게, 패티의 역할은 샐리 브라운(찰리 브라운의 여동생)에게, 패티라는 이름은 페퍼민트 패티(활발하고 왈가닥인 스포츠광 소녀)에게 옮겨진 채 피너츠 애니메이션 외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게 됩니다.

 

길을 지나가는 아이가 찰리 브라운, 계단에 앉아 있는 인물이 각각 셔미와 패티이다.

흠! 여기 찰리 브라운이 오네./찰리 브라운, 좋은 애야. 어이!/찰리 브라운, 좋은 애야./나 쟤 싫어!

<피너츠>에서 찰리 브라운과 거의 반대의 성격을 띠는 인물인 루시는 1952년 아기의 형태로 처음 등장했습니다. 찰리 브라운의 경우처럼, 루시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를 먹어 어느새 동년배가 됐죠. 위에서 말한 것처럼, 루시는 찰리 브라운을 비난하는 여자아이 중에서도 중심에 있습니다. 그가 일을 그르칠 때 마다 루시는 이 멍청아!(You Blockhead!)”라는 소리를 내뱉습니다, 미식축구를 할 때 마다 쥐고 있는 공을 슬쩍 빼 찰리 브라운을 엉덩방아 찧게 하는 몸개그는 일종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습니다. 이정도 보면 루시는 찰리를 거의 원수처럼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 스트립*을 보면 좋아하는 사람을 볼수록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니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널 쥐어 팼을 거야!/찰리 브라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니!/어떻게 훗날 네 아이들의 엄마가 될 사람에게 여자를 때릴꺼란 말을 할 수가 있니!/ 으아아아!

난 지금 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있어, 찰리 브라운.../난 네가 좋은 대통령이 될지 아니면 나쁜 대통령이 될지 확신이 안 서.../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나는 완벽한 퍼스트 레이디가 될 거라는 거지!

루시는 떠버리계의 왕입니다. 자신의 마을에서부터 시작해 떠버리 주 챔피언의 자리까지 오르죠. 그만큼 자신의 요구에 약간의 다른 점이라도 있으면 고쳐질 때 까지 떠벌입니다. 이는 곧 자존감이 높고, 어떨 때는 이기적으로 보일만큼 자기주장이 확고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또한 그녀는 자신의 동생인 라이너스를 좋아하지는 못할망정 언제나 억압합니다. 자신은 외동으로 남고 싶다는 자신의 의견을 무시한 채부모님이 아이를 하나 더 낳았다는 것이 이유였죠. 라이너스는 스트립에 등장할 때마다 자신의 담요를 꼭 쥔 채 엄지손가락을 빠는데, 적어도 루시의 영향이 적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루시는 슈뢰더를 열렬히 사랑합니다. 슈뢰더가 계속 피아노를 칠 때 마다 피아노 뒤에 기대어 있으며, 어떤 말을 하든지 슈뢰더에게 호감을 사기 위해 노력합니다. 심지어 슈뢰더가 가장 존경하는 베토벤의 석상을 깨뜨리기까지 하면서 자신을 봐달라는 일종의 시위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슈뢰더는 성만 낼 뿐 관계는 조금도 가까워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루시가 석상을 깨트린 후에도, 그는 가만히 일어나 벽장에서 수많은 베토벤 석상 중 하나를 가져가 다시 놓고 피아노를 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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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키'19221125일 이발사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초등학교 성적은 좋았지만 고등학교 때는 잘하는 거라곤 없는 문제아였고, 여자애들에게 말을 걸 요령도 없었으며, 동급생들에게는 놀림거리였습니다. 그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 대부분을 영화와 만화책을 보는데 사용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미네소타 대학 만화강좌에 등록하면서 드로잉에 눈을 뜹니다. 이후에도 그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1943년 군에 징집되어 세계 제 2차 대전에서 싸워야했죠. 무사히 퇴역한 그는 자신의고향인 세인트폴로 돌아가 상업미술 강의를 하다가 <꼬마 친구들>이라는, 자신의 첫 만화를 지역지에 연재합니다. 하지만 더 나은 조건에서 연재를 원했던 그는 뉴욕으로 가 유나이티드 피쳐스 신디케이트(만화, 사설 등 지은이의 주관이 있는 기사를 중소 언론사에 공급하는 곳)에 자신의 만화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찰스 M. '스파키' 슐츠가 연재를 시작한 초기 모습.


그리고 이것이 바로 '피너츠'의 시작이었습니다.

 

피너츠는 1950102일부터 2000213일까지 매일 연재된 네칸 만화입니다. 어른 없이 아이들로만 이루어진(실제로 어른은 언급되지만 전체 모습은 나오지 않습니다) 특이한 컨셉이 특징이며, 아이들 사이의 아이들답지 않은 대화들을 통해 전개됩니다.

네칸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50여 년 동안 17,897개의 만화를 그려낸 만큼 등장인물도 다양합니다. 우리는 보통 피너츠 하면 찰리 브라운과 스누피를 떠올리지만, 실제로 <피너츠> 첫 화에서 찰리 브라운이 한 일은 그저 길을 지나가는 것 뿐이었으며, 스누피는 아예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나마 첫화에 등장한 스누피도 단지 일반 비글처럼 보입니다. 비중이 적다는 이유로 삭제당할 위기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체가 바뀌면서 스누피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마침내 스누피는 자신의 주인보다 더 유명한 등장인물이 됩니다. 또한 찰리 브라운도 처음에는 셔미와 패티라는 두 인물 사이에서 감초 같은 역할을 하다가 바이올렛, 슈뢰더, 루시, 라이너스 등의 캐릭터가 더해지고 찰리 브라운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피너츠>에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 모습. 왼쪽 위에서부터 픽펜, 슈뢰더, 프랭클린, 샐리 브라운, 마시, 패퍼민트 패티, 라이너스, 스누피, 찰리 브라운, 루시, 우드스탁


우리나라에서의 <피너츠>는 단지 다른 미국 애니메이션 중 하나로 생각되지만 미국에서 <피너츠>란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바로 특정 기념일마다 방송되는 TV 스페셜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45편의 TV 스페셜(이 중 2개는 비디오용)이 방영된 피너츠 애니메이션의 첫 작품은 1965129CBS에서 방영된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A Charlie Brown Cristmas) 였습니다.

1960년 초반, TV 프로듀셔 리 멘델슨(Lee Mendelson)은 본래 찰스 슐츠의 삶과 피너츠에 대한 TV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었습니다. 또한 애니메이터 빌 멜렌데즈(Bill Melendez)를 섭외하여 다큐멘터리 안에 넣을 피너츠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습니다. 그렇게 다큐멘터리가 제작될 무렵, TV에 다큐멘터리를 상영해줄 방송사와 스폰서를 찾던 멘델슨은 19654, 코카콜라 컴퍼니에서 놀라운 제안을 듣게 됩니다. 자기 회사가 스폰서를 맡는 대신, 크리스마스 날 방영할 TV 스페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달라는 조건이었습니다. 학교 역할극,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장면, 재즈와 전통음악이 가미된 ost 등의 구체적인 조건도 포함해서 말입니다. 이러한 요구를 들은 원작자 찰스 슐츠는 회사에서 요구한 대로 단 하루만에 애니메이션 플롯을 짜서 보냈고, 멘델슨과 빌 멜렌데즈 프로덕션은 본래 CBS에서 제공한 예산을 2만달러나 초과한 96천달러의 예산으로 방영일로부터 거의 열흘 전 겨우 완성하게 됩니다.

 

첫 애니메이션이 완성된 후, 제작자들은 큰 기대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림체는 거칠었고, 소리와 색조도 선명하지 않았으며, 요구대로 넣은 재즈 음악은 어린이가 주인공인 만화 치고 너무 우울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영 후 애니메이션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피너츠 자체의 분위기와 줄거리를 음성, 그림체, 음악 등이 극대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이후 몇 년 동안 크리스마스가 되면 방송국에서 이 애니메이션을 꼭 틀어줬고, 그 이후에도 추수감사절, 발렌타인데이, 신정 등 특정 기념일을 포함한 다양한 시간에 수많은 피너츠 TV 스페셜이 만들어저 방영되게 됩니다.(저는 개인적으로 빈스 과랄디 트리오(Vince Guaraldi trio)가 연주한 피너츠 애니메니션의 다양한 테마들을 즐겨듣습니다) 이 작품이 없었다면, 우리는 45개의 다양한 피너츠 애니메이션과 극장판 애니메이션까지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릅니다.

 

수십 년 간 애니메이션의 플롯을 짬과 동시에 매일 펑크없이 네칸 만화를 그렸던 슐츠였지만(<피너츠>의 첫 휴재도 1997년 한 달 휴가가 전부였습니다), 세월과 병세는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말년에 파킨슨병과 대장암으로 19991214일 갑작스럽게 연재를 중단했고, 2000212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납니다. 놀랍게도, 그가 그린 세이브 만화까지도 없어져 공식적으로 마지막화가 인쇄된 날짜도 그가 죽은 다음 날이었습니다. 그의 마지막 만화에서는, 자신의 은퇴와 편집자, 독자들에 대한 감사, 찰리 브라운, 스누피, 루시, 라이너스 등 자신이 창조한 만화 캐릭터들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편지가 적혀져 있었습니다.

 

        <피너츠>의 마지막 회. 여러 피너츠 캐릭터들과 함께 슐츠가 쓴 편지가 눈에 띈다.

쓰다보니까 이야기가 좀 길어졌네요. 다음 편에는 피너츠에 나오는 주요 등장인물에 대한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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